모유수유의 환상
양이 충분치 않아 모유는 거의 간식 수준으로 먹이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모유수유에 대해 대대적인 권장 캠페인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라도 권장을 하지 않으면 아마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모유수유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유수유가 고되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면 수유나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고, 수유 간격을 정확히 맞춰서 짧게나마 자기 시간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모유를 먹이면 일단 아이를 한시도 떠날 수가 없고, 잠시 외출을 한다고 해도 불어오르는 젖 때문에 오래 나가 있을 수도 없다. 밤에 수유를 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잠을 더 자거나 할 수도 없이 꼬박꼬박 일어나 앉아야 한다. 모유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음식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참으로 못할 노릇이다.
그런데 모유수유 권장 캠페인의 문제는, 적어도 내가 볼 때는,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엄마들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살다 보면 사정상 모유를 먹일 수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모유의 양이 충분치 않다던지, 엄마가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던지(집 밖에서 모유를 먹이거나 유축하는 일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 말이다), 건강 상의 문제라든지, 여러가지다. 그런 엄마들은 거의 다가 자기 자식에게 최선을 다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마치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면 나쁜 엄마라는 식의 생각 말이다.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기는 모유든 분유든 아무거나 잘 먹고 잘 크면 그만 아닌가.
실리주의자인 나는 모유수유의 환상에 크게 물들어 있지 않다. 그저 실리적 차원에서 젖이 나오는 동안만이라도 잘 먹이고, 다음 달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한 후 항체가 전달되면 모유를 끊을 생각이다. 어차피 녀석은 지금도 필요한 영양분의 대부분을 분유로 섭취하고 있는 데다가, 이제 유두혼동이 와서 젖을 물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녀석이 내 품에 안겨 촙촙촙촙 거리면서 젖을 빨 때의 기분은 무척 근사하다. 아마도 녀석에게나 내게나 평생에 한 번 뿐인 추억이 될 것이다 (녀석은 기억 못 하겠지만서도). 그래도 모자라는 젖으로 이만큼이나 왔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죄책감 따위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아무거든 잘 먹여서 잘 키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