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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미국학 - 빌 브라이슨

성실한번역가 2010. 6. 1. 16:53

 

 

제주도 갈 때 무게와 내용을 심사숙고해서 가져갈 책을 골라 놓았건만, 출발하는 날 아침에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만 챙기질 못했다. 그래서 제주도 간 첫날 서귀포 시내의 대형마트에 들러 책을 샀다. 다른 때도 늘 책을 들고 다니긴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책이 정말 필수품이었다. 여행지에 아들놈만 데리고 돌아다니는데, 중간에 놈이 낮잠을 자게 되면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 비치해 놓은 몇 안 되는 책 중에서 힘들게 골라든 책이 바로 이 '발칙한 미국학'이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행지에서 읽기에 적당히 가벼운 내용이고, 칼럼을 모아놓은 것이라 토막토막 읽기에 좋고, 무엇보다도 빌 브라이슨이 아닌가. 중간중간에 아이 낮잠잘 때, 밤에 애 재워 놓고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릴 때 한 편씩 읽으며 시간을 죽이기에 마침맞다. 특히나 몇몇 칼럼의 경우는 나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서 푸하하하 웃으며 대공감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꾸준히 사 먹고 있는 마가린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에 관한 얘기 같은 거). 이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나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욱 친근한 작가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몇 권 읽어 보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어 보고 싶어진다. 다른 건 몰라도 에세이 류의 글은 이 사람처럼 가볍고 즐겁게 쓰고 싶다. 그건 그렇고, 이 사람의 책은 왜 다 '발칙한 ...'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붙이고 나오는 것인지? 원제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저자가 일련의 책을 시리즈로 낸 것도 아닌데 일괄적으로 제목을 갖다 붙이는 것은 좀 그렇다. 내용이 그다지 발칙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원서와 비교해 보니 10편의 칼럼이 빠져 있다. 번역의 어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출판 상의 문제 때문이었을까. 그런 사소한 점이 아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