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과연?
곧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고 난리다. TV며 라디오며 길거리에 붙은 각종 광고물이며, G20 회의로 인해 전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하는 가운데 모두 한마음으로 행사를 잘 치르자고 국민들을 닦달하는 중이다. 흠, 내가 원래 좀 삐딱하긴 하지만, 나는 사실 이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1. 당신은 바로 직전 G20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열렸는지 기억하는가?
2. 당신은 다음 번 G20 회의가 어느 곳에서 열릴지 당췌 관심이 가는가?
3. 행여라도 훌륭한 기억력의 소유자라서 G20 개최지를 어디 한 곳이라도 알고 있다고 하면, 아 G20 정상회의까지 유치할 만큼 대단한 도시이니 다음 번에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가?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이상의 내 질문에 대해서 하나라도 예 라고 답한다면,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겠다. 인간이 보편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G20 회의가 열린다고 해서 정말로 전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국가 행사를 잘 치르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당연히 잘 치러야 하지만, 그건 행사 주관자들이 잘 하면 되는 일이고, 국민들을 놓고 마치 말 안 듣는 아이가 손님 앞에서 큰 말썽이라도 부릴까 전전긍긍하는 부모 시늉은 안 했으면 좋겠다. 국민들은 그런 행사를 치를 때마다 충분히 귀찮다. 묵묵히 협조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할 일이지, 왜 허구헌날 애물단지 취급인가.
예전 호주 시드니에 있을 때 G20 회의가 그 곳에서 열렸었는데, 거기에서는 도심 교통을 모조리 통제해 버리고 대신 그 날 하루를 임시휴일로 정해 주었다. 따라서 시민들은 G20이고 뭐고 얼씨구나 하고 모두 다 바다로 튀어 나가 신나게 하루를 놀았더랬다. 이 정도 해 줄 거 아니면 캠페인은 그만 좀 하자. (하긴, 남편 말마따나 우리나라에서 임시휴일로 정해 주면, 갈 곳도 없고 달리 할 것도 없는 국민들이 다함께 세계화 반대 시위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임 : 방금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 보니 시드니에 있을 때 열렸던 행사는 G20이 아니고 APEC이었다. 하긴, G20은 미국이 세계 경제를 말아먹을 뻔한 후에 생긴 회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