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파동
얼마 전 '주제특강'이라는 과목을 듣는 중에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번 일본 대지진 때문에 한국에서 일본 기저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일본 엄마들이 탄원서를 썼단다. 일본 내 자재도 귀해졌고 생산도 줄어서 물량이 딸리니, 한국에서는 당분간 일본 기저귀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란다. 경제와 금융에 관한 주제였는데, 우리의 경제가 다른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례를 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속으로 뜨끔했다. 사실 나도 지진 뉴스를 본 첫날인가 둘째날에 기저귀부터 미리 주문을 했었더랬다. 시기 상으로는 이미 국내에 수입되어 있던 재고를 산 것이었겠지만, 아무튼 나도 일본 엄마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불편을 끼쳤구나 싶었다. 나로서도 좀 절박해서 주문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일본 엄마들만큼이야 절박하려고.
그런데 사실 이 사태의 진짜 문제점은 국내 기업들이 기저귀를 제대로 못 만든다는 데 있다. 내가 무슨 외제라면 환장을 하거나 다른 엄마들 하는 거 보고 내 아이에게 그보다 더 좋은 걸 해 주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엄마라서 일제 기저귀를 사는 게 아니다. 국산 기저귀 중 어지간한 브랜드는 다 써 봤으나 도대체 제대로 된 게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일단 제품의 외양 자체가 더 무겁고 두껍고 뻣뻣하다. 그래도 흡수력만 좋으면 그 정도는 참고 넘겨 주겠다 싶은데, 이놈의 기저귀들은 걸핏하면 새기 일쑤다. 아침마다 내복바지와 이불은 녀석의 오줌으로 흥건히 젖어 있고, 응가가 새는 난감한 경우도 꽤 빈번했다. 게다가 국산 기저귀 중에서 제일 유명한 H로 시작하는 기저귀는, 갈아 줄 때마다 보면 흡수겔이 동글동글 구슬처럼 녀석의 피부에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김 봉지 등에 들어 있는 실리카겔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걸 살갗에 붙이고 녀석은 24시간을 지내야 한다.
이런 기저귀를 도대체 어떻게 쓰란 말인가. 내가 더 분노하는 건, 생리대의 성능만큼은 우리나라 제품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이다. 출장 다니면서 전세계 생리대를 조금씩 다 써 본 경험이 있으니 내 말은 믿으셔도 좋다. 그래서 호주로 잠깐 살러 건너갈 때도 이민 보따리에 생리대는 잔뜩 챙겨 갔으며, 잠깐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도 제일 먼저 생리대를 넉넉히 준비해서 돌아 갔다. 그런데 생리대는 그렇게 잘 만드는 나라에서 왜 기저귀는 그토록 못 만드는가? 그리고는 왜 국산 기저귀를 안 쓴다고 엄마들 탓을 하는가? 생리대 사용 고객은 상대하기가 까다롭지만 말 못 하는 아기 고객들은 막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튼 아직은 여유가 있어 다행이지만, 일본이 앞으로 오랫동안 안정화가 되지 않으면 기저귀 문제를 또 고민해야 하게 생겼다. 얼마 전에 분유에서 식중독균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일찌감치 분유를 끊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는데, 이제는 또 기저귀가 문제다. 올해 안에는 기저귀를 좀 떼려나. 이래저래 애 키우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