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
일년에 두 번 오는 아들놈의 방학. 그래도 좀 컸다고 같이 있는 게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물론 거기에는 로보카 폴리와 꼬마버스 타요의 도움이 크긴 하지만.
아들놈이 폴리를 보거나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인을 뒤적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는, 딱히 일을 하기에도 애매하고(아들놈은 내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폴리고 뭐고 당장 엄마 옆에 달려 와서 하염없이 집적거린다.....) 해서 옆에서 가벼운 책을 읽고 있다. 그리하여 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집을 몇 시간 만에 뚝딱 읽어치웠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깔깔거리며 읽은 책(가끔 내가 우하하하 웃어제끼면 옆에 있던 아들놈이 깜짝 놀라, 엄마 뭐 봐요? 그런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소설도 제법 챙겨 읽었건만 나는 암만 해도 그의 에세이 팬이다. 그의 에세이만큼은 아무리 시시껍절한 것이라도 사서 읽지 않은 것이 없다. 얼마 전에 나온 잡문집은 그야말로 잡문을 모아놓은 것이라 가끔씩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 에세이는 20년전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시절에 읽었던 에세이들처럼 신선하고 유쾌하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떤 독자의 리뷰를 보니까 이런 식의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내면 곤란하다는 내용으로 써 놓았던데, 그건 하루키 에세이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 사람의 에세이는 원래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부담없이 유쾌하게 늘어놓는 글이다. 뭐 대단한 걸 기대하고 보면 안 된다.
제목은 상당히 로맨틱하게 들릴 법하게 뽑아 놨지만, 책을 들춰 바다표범 얘기를 읽어 보면.... 음..... 표지에 있는 일본어를 대충 읽어 보면 이게 원제가 아닌 것 같은데(띄엄띄엄 읽어 보면 아보카도 얘기가 원제였던 듯... 그래도 일본어 공부하는 보람이 조~금 느껴진다...), 만일 한국에서 임의로 붙인 제목이라면 편집자의 센스에 박수를. 바다표범의 키스.... 음......
덧: 아, 근데... 이 책 예전에 사서 묵혀 뒀다가 이제 읽은 것인데, 지금 다시 서점을 가 보니 머그컵 증정 이벤트를 하고 있다.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