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시즌 2
얼마 전 카오리 씨로부터 갈릴레오 시즌 2가 방영된다는 핫한 소식을 전해 듣고 종영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가 드디어 지난 주에 한 번에 몰아서 다 봤다. 제법 재밌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봤는데, 인터넷을 뒤져 보니 뜻밖에 시즌 1만 못하다는 평이 많아서 궁금한 마음에 시즌 1도 다시 찾아서 다 봤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참 잘도 간다.
시즌 1만 못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요약해 보면, 먼저 에피소드에 나오는 트릭이 그냥 첨단기술을 이용한 최첨단 기기로 한 방에 해결되어 버려 재미가 덜하다는 것이고, 새로 등장한 여형사의 캐릭터 설정이 잘못 되어 영 어색한 데다 1시즌에서 잘 구축해 놓은 여형사와 주인공 유가와 교수 사이의 미묘한 연애 감정 같은 것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음. 에피소드의 트릭은 뭐, 전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탓일 것이다. 시즌 1 같은 경우 학부 1, 2학년의 실험에 나올 법한 과학의 기초 원리에 충실한 아기자기한 트릭이 대부분이었고, 시즌 2는, 아마도 소재가 고갈된 때문이겠지만, 좀 더 화려하면서 첨단의 단편적인 기술이 많이 등장한다. 트릭의 재미로만 따지자면 시즌 1 쪽이 좀 더 다채롭긴 하다. 그 점은 나름 공감이 간다. 물론 물리학 교수가 허구헌 날 기초 물리학 수준의 실험이나 하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런데 유가와라는 캐릭터가 과연 작품 속에서 여형사와 연애를 하는 것이 어울릴 만한 캐릭터인가? 오히려 캐릭터 면에서는 시즌 2의 유가와 교수가 원작에 더 충실해진 것 같은데 말이다(헤어 스타일도 시즌 2 쪽이 낫다. -_-;;). 다시 본 시즌 1의 유가와는 그냥 뭐든지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고 머리도 좋은 수퍼맨 스타일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가와라기 보다는 그냥 후쿠야마 마사하루 그 자체다. 뭐 TV 드라마는 아무래도 좀 더 폭 넓은 대중을 노려야 하니 주인공도 더 매력적이어야 하겠고 여러 이유로 원작에는 없는 우츠미 카오루의 캐릭터도 창조하고 했겠지만(그리고 이로 인해 나름의 시너지 효과가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이런 드라마에서까지 굳이 연애하는 남녀를 봐야겠다는 대중의 심리가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연애를 보고 싶으면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 되지 않는가? 굳이 캐릭터를 왜곡시켜 가면서까지 연애를 봐야겠다는 그 심정은 무엇인지? 무슨 사정에서인지 배우가 바뀌고 캐릭터 설정이 잘못 된 여형사가 들어온 덕에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람에, 유가와의 캐릭터가 한결 더 본래의 유가와에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나는 시즌 2가 더 마음에 든다.
추리소설을 숱하게 읽어 오면서 여러 종류의 직업을 가진 탐정들을 봐 왔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물리학자 탐정은 유가와 마나부가 유일하다. 물론 물리학자들이 정말로 그런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집 물리학자도 그렇고 내가 아는 다른 물리학자들도 그렇고, 일상 생활에서는 다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서 키우고 살림도 한다. 유가와 마나부의 캐릭터는 따지고 보면 전공이 물리학일 뿐, 사실은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같은 고전 추리물의 탐정에 더 가깝고, 그 위에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과학자의 스테레오 타입을 덧입힌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튼 타이틀이 물리학자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고 할까. 내용 면에서도 업계 종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꺠알 같은 재미들이 듬뿍 있다.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들 대부분은 남편과 함께 봤는데, 아마 다른 일반인 친구와 같이 봤다면 그 정도로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분위기다.
<갈릴레오 시즌 2 제 2화 '가리키다' 중>
남편: (한참 보다가) 근데 저거 광학 테이블이잖아?
나: 어, 그러네! 푸하하하하!!
이걸 이해하셨다면 당신도 업계 종사자일 것이다. 하하하하하!
아무튼 시즌 1, 2에 스페셜 판까지 다 떼고 나니 이후 관련 작품들(영화와 소설 '한여름의 방정식': 우리가 교토에 갔을 때 영화가 한창 상영 중이었다. 그 땐 몰랐지만.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 신작들)도 궁금해졌다. 조만간 국내에도 들어오겠지. 그럼 또 동종업계 종사자만이 즐길 수 있는 깨알 같은 재미를 만끽해 줄 참이다. 그나저나 가끔은 이렇게 대중의 눈높이에 잘 맞춰 주는 탁월한 이야기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하고 부러울 때가 있다. 분명 그런 인재는 어딘가에 존재할 텐데, 우리나라 문학계가 그런 인재들을 품을 만큼 포용력이 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