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놈과 대화를 나눴다.
나: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뭐 하고 놀았어?
아들놈: 응, (어쩌구저쩌구) 하다가아~ (이러구러) 해 가지고~ (웅얼웅얼)...... 준서 때렸어.
음... 아들놈이 요즘 말도 많이 늘고 기억력 스팬도 꽤 길어졌지만 아직은 서사가 뒤죽박죽이라 말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좀 힘들다. 그래도 너무 구체적인 상황이 나와서 다시 물어보았다.
나: 준서랑 싸웠어?
아들놈: 응, 그거는, 준서가 (이러쿵저러쿵) 해 가지고, 흥! 하는 거야.
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친구랑 싸우면 안 되지, 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어린이집 원장님이 데리러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준서 엄마가 그러는데 어제 저녁에 준서가 윤섭이한테 맞았는데 윤섭이를 좀 말려 달라고 엄마한테 그러더라며 주의를 시켜 달라고 부탁하시더란다. 아....... 준서라는 아이가 좀 순하고 조용한 아이인데, 어제는 둘 사이에 뭐가 틀어졌는지 윤섭이가 준서를 깔아 뭉개고 앉아서 열심히 두들겨 패더라고..... 아이고.... 엄마도 아빠도 폭력이라면 딱 질색인데 이놈의 자식은 도대체......
아이들의 세계는 정말 문자 그대로 약육강식의 세계인데, 이놈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항상 몸집이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누구한테 밀려본 경험이 없다. 어떨 때 보면 자기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11월에 태어나 동갑내기 친구들에 비해 개월수는 한참 모자라면서도 수가 틀리면 힘으로 또래를 제압해 버린다. 또래 뿐만이 아니고, 이젠 나도 힘으로는 이놈한테 밀린다. 먹기는 또 좀 잘 먹는가 말이다. 에효.....
어제 아들놈의 얘기를 듣고 사태를 파악했으면 어제 혼을 냈을텐데.... 할 수 없이 아들놈에게 오늘 가서 준서에게 미안하다고 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아들놈은 이해를 하는 건지 어쩐 건지 생글생글 웃으며 네에~ 하고 대답만 잘 한다.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요즘 내년에 아들놈을 보낼 유치원을 알아보고 있다. 가족적이고 편안한 어린이집에 비해 유치원은 다소 학교 같은 분위기라서, 이 어린 것을 제도권 교육에 이렇게 일찍 밀어 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싶어, 5세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 사건을 계기로 유치원에 보내야겠다고 결심을 세웠다. 이 자식은 더 이상 아기도 아니고, 이런 놈을 어린이집에 보냈다간 그야말로 순한 양떼 사이에 늑대를 풀어놓는 꼴이다. 유치원에 보내서 혹독한 단체생활을 통해 선량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해야겠다. 아.....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친구 엄마들에게 굽신굽신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확실하게 예절 교육을 시켜 주는 것일까? 우리 아들놈은 아무래도 스파르타 식 유치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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