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서를 내고 집에 돌아오니, 문득 막막한 기분이 좀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붙들고 넋두리를 좀 해 봤습니다.
"이봐 염동일, 내가 지금 공부하면서 하는 게 되게 많은데, 보통 영한 통역, 한영 통역, 영한 번역, 한영 번역, 이런 거 한다구. 근데 내가 이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하고 있을 때 가장 즐겁고, 전혀 스트레스도 되지 않고 부담없이 하는데다가 제일 잘 하는 게 바로 영한 번역이야. 생각해 보면 난 원래 그냥 말년에 좋아하는 책이나 번역하며 살자고 여기 뛰어든 건데 말야. 근데 오늘 통대에 원서를 내고 왔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갑자기 문득, 내가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자 남편은 싱글벙글 웃으며 단순명쾌하게 답했습니다.
"뭐하는 짓이긴, 잘 하는 짓이지. 잘 하고 있어, 배지은!"
어이구, 이 단순왕... 그래도 머릿속이 뒤죽박죽일 땐 이런 단순왕의 논리가 제법 힘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벌려놓은 일이 많아 고민할 게 많다고 하소연하는 남편은, 그러면서도 밤 11시만 되면 졸립다며 잠자리에 들고 베개에 머리를 댄지 불과 몇 초만에 코를 드르렁거리며 잘도 잡니다. 고민 많다는 놈이 뭔 잠은 그렇게 잘 자냐고 타박을 주면, 자기는 원래 생각이 많으면 잠을 잘 잔다고 되도 않는 변명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랑 비슷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네이버 지식인을 뒤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이 오나요", 뭐 이런 식으로... -_-;;)
이런 건 좀 닮아야 할 텐데... 나도 사실 예전엔 꽤나 낙천적인 인간이었는데, 산전수전 다 겪다 보니 약간은 기세가 꺾인 듯. 아무튼 생각을 좀 덜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시험 끝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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