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diary

인체의 신비

성실한번역가 2008. 11. 3. 21:28

시험을 치르고 계신 분이라면 누구든 그러시겠지만, 저도 요즘은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마치 체내에 세균이 침입하면 면역 시스템이 작동해서 이러저러한 증상이 나타나듯이, 정신적으로도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각종 방어기제가 작동하는가 봅니다. 물론 괴롭긴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런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시험 하루 전이었던 금요일 같은 경우에는, 아침부터 무기력해서 옛날에 친구가 시험 떨어지면 오라고 했던 회사가 아직도 사람 뽑나 하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얼마 전에 이코노미스트에서 봤던 구인광고 (르완다 정부에서 IT 기술자를 모집하고 있음)를 뒤적이며 시험 떨어지고 나서 잠적하려면 르완다로 가면 되겠군, 이런 상상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불끈해서, 외대 따위가 날 떨어뜨리다니, 그랬다간 다 부셔 버리겠다, 하고 부글부글거리다가, 그래도 만일 합격하면 합격자 수기는 어떻게 쓸까 궁리도 해 보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던 남편은, "네가 드디어 정신분열의 징후를 보이는가 보다"라며 흥미로워 합니다. 흠, 흥미롭기도 하겠죠. 제가 저 스스로를 봐도 흥미로운데 남편은 오죽하겠습니까.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별별 희한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시험 때문에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니고, 설령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게 인생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아마 다음 기회가 또 있을 수도 있을 테죠. 하지만 이게 이렇게 스트레스가 되는 까닭은, 내가 이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처리하기 위해 애써 '이까짓 거 안 된다고 해서 그게 뭐 대수야'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썩 잘 먹혀들지는 않아서, 스스로에게 잘 속아지지가 않네요. ^^

 

솔직히 제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 바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런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 보면, 2차 준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1차는 일단 합격했다고 가정하고 싹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참, 그러고 보면 외부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어떻게든지 공격을 다스릴 방법을 찾아내니까요. 지금 시험 준비하시는 동기 여러분들도 각자 관리 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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