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워 보면 부모 마음을 알 거라고들 하던데, 글쎄다. 아이 낳기 한참 전에 예측했던 대로,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식의 마음을 새롭게 헤아려 보고 있다. 흔히들 부모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오히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이 훨씬 더 무조건적이다. 적어도 시작은 그러하다.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하는 존재이며 세상의 모든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자기에게 해꼬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건 아예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저 멀리에서 부모의 얼굴만 보아도 활짝 웃으며 그저 좋아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어서 설령 밥에 독을 타서 먹인다 해도 방긋방긋 웃으며 넙죽 받아 먹을 것이다. 부모가 똑똑하든 바보이든, 잘 생기든 못 생기든, 돈이 많든 적든 조금도 상관없이 좋아하고 따르고 사랑한다.
그에 반해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보지 않는다. 속세를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나중에 커서 자기 아이가 옆집 아이보다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아 왔으면 좋겠고, 영어 수학도 잘 했으면 좋겠고, 맘이 잘 통하는 친구보다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친구들만 사귀었으면 좋겠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녔으면 좋겠고, 그래서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자식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한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이건 이래서 해야 되고 저건 저래서 하면 안 되고... 아기를 키우면서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주'는 것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인가. 그런 육체노동은 그냥 생각없이 몸을 놀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까지 숭고한 일은 아니다. 물론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부모의 역할 중에서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시기의 부모의 육아 노동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일평생 가슴에 달고 유세를 하게 하는 빌미가 된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신뢰 관계가 무너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자식은 백지 상태로 시작하는 반면 부모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상당히 무섭다. 늘 나를 보고 입이 찢어져라 환하게 웃는 아들놈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해야 녀석이 끝까지 저렇게 날 좋아하도록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이 된다. 놈이 지금 나에게 품고 있는 무한한 신뢰를 끝까지 지키는 것은 당분간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그래서 부모 노릇이 어려운 것이지 달리 어려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