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journal

재미있는 일

성실한번역가 2010. 12. 14. 23:05

학기 초에, Advanced English 라는 과목에서 에세이 과제가 나왔다. 한 학기동안 특정한 문화에 대해 직접 참여하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점을 가지고 A4 15장 내외로 쓰라는 것이었다. 사실 선생님의 의도는, 늘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번역가의 숙명적 현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취재를 해 보라는 것이었다. 취지야 좋지만, 젖먹이 아들놈을 달고 사는 내 처지에 무슨 취재며 체험이란 말인가. 그래서 내가 최근에 경험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특이한 문화체험이었던 임신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지난 번 올렸던 짧은 영문 에세이가 바로 이 에세이의 일부분이었다.

 

그리하여, 학기말 시험을 하루 앞둔 오늘 밤, 19 페이지짜리 에세이를 탈고하고 흐뭇해 하는 중이다. 음. 사실 이 에세이는 과제이면서도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과제였다. 주제를 잘 골랐다 싶은 것이, 주어진 기간도 길었고 내용도 방대하고 양도 어마어마했지만, 쓰는 동안 내내 작년 임신 기간 중 좋았던 기억을 계속 되새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에세이는 다른 번역 과제를 하면서 잠깐 좀 쉬어야겠다거나, 아니면 시간이 남을 때 재미삼아 조금씩 틈틈이, 우스운 에피소드를 쓸 때면 혼자 키들키들 웃으면서 써 나갔고, 덕분에 마감이 다가와도 여유있게 손질하면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마감에 맞춰 밤을 새워가며 꾸역꾸역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좀 호강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에세이를 통해 얻은 교훈은, 앞으로도 가급적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건 지난 시절에 이미 할 만큼 다 했다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은 내 경쟁력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래도 완성도 차원에서 급이 다를테니 말이다.

 

올 한 해를 통틀어 얻은 교훈 중 제일 중요한 교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행인 것은, 나는 번역이 재미있다. 음하하하하.

 

이 영문 에세이는 잘 뒀다가 아들놈이 영어 공부를 할 무렵이 되면 공부하라고 줘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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