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들놈 방학 첫날이었다. 물론 주말에는 집에서 지냈지만, 평일에 아프지도 않은데 집에 하루종일 있었던 것은 지난 8월 여름방학 이후 처음인 듯 하다.
여름방학 때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되었던 때이고 녀석도 아직 어릴 때라 뭐가 뭔지 그냥저냥 싶었을 것이다마는, 오늘은 보니까 확실히 녀석이 - 집에 있는데도! -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일단은 응가를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응가를 안 한다. 분명히 배가 고플 텐데도 밥을 잘 안 먹는다 (하긴 요즘은 밥 먹는 걸 좀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에는 밖에 데리고 나가면 신이 나서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하던 놈이 오늘은 유모차에 철썩 들러붙어서 겁먹은 듯 눈동자만 연신 굴린다. 결국 두 번째 낮잠은 자지 못하고 저녁 7시 반에, 저녁상 준비하는 걸 채 기다리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 분유 한 병 원샷하고 잠들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아들놈은, 주위 환경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을 설명해 줄 방법이 없는 애매한 나이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놈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아주 잘 따르는 편이라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는 걸 좋아하는 듯 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남편이 출근하는데 외출복 들고 쫓아다니면서 같이 나가려고 용을 썼다). 그러니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오늘의 상황이 어리둥절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 좀 딱하다. 2주만 집에서 엄마랑 지내다가 다시 어린이집에 갈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 딱한 것은, 2주 동안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다시 어린이집에 가면 그 때 또 어리둥절해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곳 선생님들은 으레 그러려니 새로 적응시킬 각오를 아예 하고 계시겠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돌 무렵 요맘때가 아기들이 가장 귀여울 때라고들 하는데, 나는 지금이 제일 애매한 시기같다. 어디 데리고 다니기도 더 힘들고. 오히려 더 어리거나, 아니면 아예 말이 통하거나 할 때가 더 나을 듯.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놈이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 심난하던 차였는데 말이다.
(남편에게 녀석이 오늘 응가를 제 때 안 했다고 전하니, 우리 효자 아들놈이 엄마 손으로 제 응가를 치우지 않게 하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가서 응가하려고 꾹 참았는데, 참아도 참아도 어린이집에 보내질 않아서 결국 저녁 때 싼 것 아니겠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흠... 터무니없지만 어쩐지 믿고 싶은 구석이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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