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여름에는 역시 뜨개질

성실한번역가 2011. 6. 29. 14:01

시작은 단순했다. 아들놈이 걸음마를 하게 되면 작은 가방을 하나 떠 주겠다고 작년부터 벼르고 있었다. 이제 녀석은 걸음마를 넘어서 사방팔방 뛰어 다니고 온 동네 계단을 다 오르내리고, 한 마디로 아주 날아다니고 있다. 여름방학도 시작되었다. 8월 말에는 2주 동안 시드니로 여행도 가니, 아무래도 녀석의 가방이 하나쯤 필요하다. 드디어 녀석의 가방을 떠 줄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산 소라색 실로 배낭을 뜨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눈어림으로 뜨기 시작했더니 이게 너무 크다. 다시 풀기는 싫고, 그럼 그냥 녀석과 커플룩으로 메고 다닐 수 있게 내 크로스백을 만들자 했다. 그래서 하루 만에 후루룩 가방 몸체를 떴다.

 

(아, 곱기도 해라...)

 

그러고 나니 아들놈 가방을 뜰 실이 모자라게 되었다. 헐. 원래 놈의 가방을 뜨자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또 풀어서 뭘 다시 하기는 아깝다. 그래서 그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며 눈여겨 봐 둔 지동시장의 털실 가게로 향하게 된다.

 

가게에 들어서니 오오, 실로 감동의 도가니다. 이런 곳에 이렇게 실이 많은 가게가 있었다니.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내가 살 실을 찾았는데, 웬걸, 그렇게 많은 실 중에 내가 사야 할 실만 딱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다른 실이 눈에 들어 왔다. 이건 뭐, 가히 운명의 장난이라 할 수 있다. 그 순간 머리가 뽀개지도록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이 노릇을 어쩔 것인가. 한 십 여분 실 앞에서 서성서성거리다가 결국, 엉뚱한 다른 실을 사 들고 집에 왔다.

 

 

(이런 실을 두고 발걸음을 돌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처음에 뜬 가방은 친구에게 양도하기로 하고, 새 실로 룰루랄라 다시 가방을 뜬다. 실이 굵으니 속도도 훨씬 빠르다. 그리하여 다시 완성한 내 크로스백. 아직 마무리가 남았다.

 

 

(캬~!!)

 

아들놈 가방 몸체도 일찌감치 완성해 두었다. 졸지에 가방 세 개를 뚝딱 만든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안감천, 가방끈, 아들놈 가방에 붙여 줄 똑딱단추랑 곰돌이 단추 같은 것들을 바리바리 구매해서 싸 들고 동대문 시장에 가는 것이다. 지금 하는 알바가 대충 정리되면 한 번 나가야겠다. 아무튼 여름에는 뜨개질이 최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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