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journal

공감

성실한번역가 2009. 9. 17. 19:53

예전에 잠깐이지만 담배를 피웠던 적이 있다. 흡연자였던 남편(그 시절엔 남자친구)과 장난처럼 피우던 것이었는데, 특별히 어떤 물질에 중독이 되는 체질이 아니었던지 중독에까지 이르지 않고 끊어야겠다 싶을 때 딱 끊었다. 하긴 뭐, 담배를 피웠다고 해도 하루에 다섯 개비나 피웠으려나. 그야말로 장난 수준이긴 했다만.

 

지금은 여느 비흡연자들처럼 담배연기에 질색을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동안의 흡연자 생활로 인해 얻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담배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어떤 심정으로 담배를 빼어 무는지, 담배를 피울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담배를 둘러싼 각종 상황과 심상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그냥 누가 알려줘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잠깐 동안의 흡연자 생활이 나쁘게 기억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내가 속해 있지 않았던 다른 세상에 한 번 발을 들여 놓았었던 것이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그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졌다고나 할까. 

 

지금의 임신도 그와 비슷하다. 아이를 갖기 전에 머리로 이해했던 임신과 모성의 실체를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보니 이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새삼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왜 '연애시대'의 주인공들은 출산 과정에서 아이를 잃고 결국 파경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공감이 간다.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그 상황에 대해서 역시 공감까지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떠한 형태로든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세상을 폭넓게 보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된다. 번역가가 되려면 이런 경험들이 더더욱 필요하겠지.

 

오늘 뉴스를 보니 유재석 나경은 부부가 임신 3개월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떴다. 뉴스를 보면서 내 3개월 시절이 생각나면서 흐뭇해지는 걸 보면 나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하고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personal jour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제  (0) 2009.09.28
이제는 신발....  (0) 2009.09.21
과연 이 녀석은 복덩이인가?  (0) 2009.09.15
집 계약  (0) 2009.09.03
균형 잡기  (0) 200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