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 있던 어떤 여자가 살갑게 인사를 건네며 무슨 책자 같은 것을 보라고 준다. 자녀 교육에 관한 광고책자인가 본데, 영유아부터 시킬 수 있는 것이란다. 흠, 아직 애는 뱃속에 있는데 뭘 벌써 이런 것을... 이런 거 필요하려면 아직도 몇 년은 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만, 그 여자는 그렇지도 않다며 '요즘 태교할 때도 아이들 책 많이 읽어 주시잖아요' 라고 말한다. 거기에 대고 나는 '전 태교 안 하는데요' 라고 말해 버렸다. 그랬더니 살짝 당황하는 듯한 눈치다.
울나라 임산부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태교라면 난 당연히 안 한다. 안 그래도 세상에 나오면 이것저것 배울 것에 치일 운명인데, 뱃속에 있을 때라도 좀 편안히 있게 내버려 두면 안 되나. 어느 임산부는 아이 머리 좋아지라고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안 하던 공부를 임신 중에 하기도 한다는데, 이런 류의 얘기를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이 사회가 얼마나 미쳐 돌아가고 있으면 머리 좋은 아이를 낳자고 엄마들이 이렇게까지 열을 올리나 싶어서이다. 그런 행위가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 동안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본 바,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오히려 주체적이고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그런 가치관은 어차피 태아 시절에 심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에 부모라면 아이에게 그런 가치관을 형성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더 고민해야 맞는 것 같다. 이게 뱃속 태아에게 영어책을 읽어 주거나 수학문제를 풀어 주거나 하는 거보다 더 중요한 문제 아니겠는가.
내가 굳이 태교라고 이름 붙일 만한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냥 아이가 뱃속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세상만사 잡다구레한 일에 휘둘리지 않고, 몸에 좋은 거 먹고(라기 보다는 좋지 않은 음식을 피하는 쪽 위주이지만), 좋은 음악 듣고 나 읽어야 하는 책 읽고, 뭐 그 정도. 아, 거기에다 나날이 우량아로 성장해 가는 녀석의 체중 관리를 위해 죽어라 운동하는 것도 포함시켜야겠다. 흠... 이렇게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니 이 녀석이 이렇게 오버사이즈로 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원체 낙천적인지라, 이 녀석도 태아들 중에서 제일로 무사태평할 녀석이다. 이 정도면 태교로서는 괜찮은 태교가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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