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journal

12월 중순....

성실한번역가 2013. 11. 21. 23:03

12월 중순에 작년에 번역한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온다.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취미실용 전자공학책이다.

 

아니 이거 뭐, 둘이 짠 것도 아니고, 생판 관련도 없는 두 출판사가 같은 날 전화를 해서 책 출간을 위한 후속 작업을 부탁하더니(그 날 살짝 멘붕이....), 출간일도 엇비슷하게 12월 중순이다.

 

그런데 이게 웃기게 된 게, 취미실용 공학책에 역자 약력을 넣으면서, 그냥 편집자더러 한번 웃고 넘어가시라고, '옮긴 책으로는 <샴 쌍둥이 미스터리>, <밤의 새가 말하다>가 있다.' 이렇게 적어 넣고, 어울리지 않으면 삭제하셔도 된다고 했는데, 편집자 님이 몹시 좋아하면서 이 약력을 그대로 싣기로 한 것이다. 소설 번역하는 인간이 기술책을 번역해 준 것이 신기하셨던 듯하다.

 

그런데 더 난감한 건, 이쪽에 약력을 이렇게 넣었으니, 소설 쪽에 전자공학책을 안 넣기도 우스워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소설 쪽엔 <Make: 아두이노 DIY 프로젝트>가 역자 약력에 올라간다. (소설 쪽 편집자 님은 여기에 대해선 반응이 없다.)

 

이렇게 해 놓고 나니,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가 이 책은 이렇게 번역하고 저 책은 저렇게 번역하려던 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소설이나 전자공학 책이나 내 입장에선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물론 접근 방식이나 작업 스타일은 다르지만). 어느 분야든 나로서는 최선을 다 해야 하는 분야이고, 초짜인 주제에 최선도 다 하지 않을 거면 일 그만 둬야지. 그 책들을 서로서로의 약력에 올리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모두 다 내가 열심히 만든 책들이니까.

 

처음에 두 분야의 경력을 따로 관리해 보겠다는 생각은, 행여라도 소설 쪽 편집자가 과학책 번역한 걸 보고 내 실력을 미심쩍어 한다거나, 또는 그 반대로 기술서의 편집자가 나를 못 믿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막상 일을 해 보니 내가 성실하게 작업을 하면 그런 건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다. 그래, 생존의 열쇠는 성실성이다. 다른 핑계 댈 것 없다.

 

그래서, 혹시라도 책을 사면서 번역자의 이름도 챙기는 독자가 계시다면, 12월 중순에 느닷없이 두 권의 책을 들고 등장하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에 황당하실 것 같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싶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괜시리 혼자 재밌다(그런데 뭐 그런 일이 있을리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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